가심비
가격에 비해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가성비가 높다고 합니다. 가성비가 높으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싼 가격으로 기대이상의
성능을 경험하니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가성비가 높은 것도 좋은 것이지만 가심비가 높으면 훨씬
더 좋습니다. 가심비가 뭐냐고요? 가심비가 무엇이지 또 어떤 것들이
가심비가 높은 것인지 찾아봅시다 누가복음에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여인이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엄청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드라크마를 찾지
못하면 어떤 큰 피해라도 입을 것처럼 말입니다. 찾은 후에 이 여인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에 벗들과 이웃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 드라크마의 가치는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과 같은 것으로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3~4만원 정도이지요. 따라서
한 드라크마를 찾아서 기쁜 마음은 알겠지만 구지 많은 비용을 들여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대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이 점에서 사실 이해가 안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를 못하는 것은 우리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구요? 당시 여자들은 결혼증표로 드라크마 열 개를 연결하여 만든 목걸이를 신랑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여자가 이 증표를 잃어버리거나 훼손하게 되면 바로 이혼사유가 되었습니다. 남자의 권한이 막강한 고대 사회에서 남자들은 이혼사유가 분명하지 않았을 때에도 일방적으로 여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오늘 같은
일은 여인의 삶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게 됩니다. 이것은 여자가 결혼생활에 불성실한 증거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남자와의 간통으로 내몰리는 빌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여자가
결혼 예물을 잃어버린 경우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이 여성에겐
열 드라크마가 화폐로서의 가치 그 이상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자의 생명과 같은 소중한 물건이요,
삶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을
때 악착같이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것을 찾았을 때 여인은 비로소 이혼 당할거라는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이혼 당하지 않는다는 주체할 수 없는 큰 기쁨에 동네 방네 떠들며 잔치까지
벌인 것입니다. “나랑 함께 즐기자.” “이리 와서 축하해줘.”
이 여자에게 한 드라크마는 한 드라크마가 아니었다. 이미 말씀한대로 여자에게 드라크마는
결혼증표로서 그녀의 삶을 지탱해 주는 전부였습니다. 드라크마를 찾은 그녀의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드라크마가 가지는 원래 가치보다 몇 배, 몇 십 배, 아니 몇 천 배 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가심비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가심비가 뭐냐구요?
가심비는 ‘가격 대비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켜주는 정도’를 말합니다. 가심비가 클수록 우리의 영혼이 더 큰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가심비는 단순히 기분의 문제를 넘어
영혼의 기쁨을 누리게 만듭니다.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신의 영혼이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늘 슬픔에 잠겨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도 자기 영혼이 공허하면 뭐할까요? 설령 가진 것이 적어도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그 영혼이 참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한 사람이 바로 높은 가심비를 누리는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일상의 삶에서 단순히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가성비보다 영혼을 만족시켜 주는
가심비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가심비가 높은
일들이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먼저 영혼구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 가치도 없는 죄인이 의인이 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남의 영혼도 살리는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영혼이 사는 최고의
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전도한 불신자가 성도가 되어 교회를 아름답게 섬기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우리
영혼이 기뻐 춤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형제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과 우리의 목숨을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이죠.
우리도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고 내가 먼저 좀 더 배려하고, 양보하고 섬기면 우리 영혼이 춤을 추는 최고의 가심비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 받았으니 이제는 서로 사랑 하며 살면서 영혼의 참 만족을 누리길 간절히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영혼구원과 형제사랑에 힘쓸 때 우리 영혼이 이 땅에서 참 만족을 누리며 천국의 삶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 형제사랑, 이 두 가지는 가심비 최고의 2종 선물 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