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조건
나라마다 부활절을 지키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지켜야 하는 부활절 전통이 있습니다. 그 전통이 무엇인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봅시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받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시자 곧 바로 실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다급하게 막았죠. 비록 이삭이 죽지 않고 살았지만 아브라함은 이미
믿음으로 이삭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아브라함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한마디 따지거나
원망하지도 않고 수풀에 뿔이 걸려 버둥거리고 있는 숫양을 잡아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이삭 대신에 번제물로 드립니다. 성경은 이런 아브라함의 반응을 믿음이라고 기록했으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은 이유는 그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외아들을 믿음으로 죽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목숨보다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면 하나님이 ‘우리가 죽인 것들’을 다시 살아나게 해주 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인정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 할까요?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 어린 양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대신 못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자녀를 죽여서
번제로 드려라’는 명령을 안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나쁜 성질을 죽이고, 이기심을 죽이고, 자존심을 죽이고, 부질없는 열등감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를 죽이라’고 할 때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원하는 걸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준다’고 믿는 것이
큰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안 아프게 해주는 복을 준다’고 믿는 게 참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믿음입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도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나의 생명까지
가져가도 ‘하나님으로 나는 만족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아브라함 같은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활한다’는
의미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반드시 먼저 죽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 전제되지 않는 부활이란 없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죽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죽어야 하나님이 새 일을 시작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죽어야 주님과 함께 산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절은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엄청나게 기쁜 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정말 믿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언젠가 재림하실 때 ‘우리도
부활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은연중에 마르다
처럼 부활을 미래적인 시점으로만 생각합니다. 정말 부활이 미래적인 일만일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오늘날 부활절은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서 우리 믿음을 방해하는 나쁜 기질과 열등감과 자존심과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악한 마음을 조각조각 내어 죽이는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라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죽여서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영혼과 새 삶을 주는 복된
날입니다. 할렐루야. 부활절에 아무리 계란을 굴려도 계란이
부활해서 병아리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한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나려면 어미 닭이 알을 품고 3주 동안 마치 죽은 것처럼 참고 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미래적인 부활을 제대로 맞이하려면 믿음을 품고 자신을 죽이는 현재적인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부활절에
외국의 몇몇 전통처럼 아무리 물을 뿌리고, 막대기로 때려도 오래 사는 복이 오지 않습니다. 부활절에 복을 받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죽이고,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뿌려주는 은혜와 사랑을 촉촉히 맞아야 합니다. 부활절을 제대로 지키려면 고난만 체험하면 안된다. 입 닫고 말을 안 한다고 부활절을 제대로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절을
제대로 지키려면 완전히 자신이 죽어서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부활을 위한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