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믿음
원래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에 ~주의가 붙으면서 그 뜻이 완전히 변질된 용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권위는 좋은 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권위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집안의 가장은
아버지로서의 권위, 일국의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합당한 권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가 되면 모든 것을 권위로 해결한다는 의미로 변질됩니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정치적 이�인 사회주의도 좋은 예가 됩니다.
원래 사회라는 말은 공동체를 의미하는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되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개인의 유익은 제한받는다는 의미로
변질되어 나쁜 말이 되어 버립니다.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전체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한 가지를
더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것을 구별하지 못한채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조와 신조주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믿음이 바로 신조입니다. 신조는 신경이라고도 합니다. 그
의미는 굳건하게 믿는 바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신조주의는 무엇일까요? 행함이 없는 믿음이 바로 신조주의입니다. 초대교회 당시나 현재나 성도들이 이 신조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공허한 신조주의에 빠져서 행위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믿으니까 구원은 받는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설령 죄를 짓거나 혹 말하고 행동하고 달라도 구원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사람들이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구원파가 바로 신조주의에 빠진 단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원파는
“한 번 구원받았으면 죄를 지어도 회개할 필요도 없고, 구원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구원파는 당연히 이단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인 신조주의는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는 일종의 인본주의적 현상을 말합니다. 즉, 믿음이
있어도 행함이 없을 수 있다는 교묘한 주장인 것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옳은 말 같지만 그 안에는 교묘한
속임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가 말한 것 처럼 성도들의 믿음이 진짜라면 믿음의 진정성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심지어 만약 성도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적절한 행함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즉, 그
믿음은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엉터리(가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부분에서 이런 신조주의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가령, 자신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확실히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삶 속에서 믿음의 지체들을 미워하고, 시기질투하고, 사랑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또 함부로 말을 내뱉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시험들게 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마치 계급인양 권위주의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들이 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인 신조주의에 빠진 일그러진
우리내 모습들입니다. 성도로서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큰 죄를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받는 진짜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바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죽으심이 우리의 구원 뿐만 아니라 우리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백성으로 만들기 위함임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 모두는 진짜 믿음을 증명하는 선한 일들인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주님 앞에 드려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힌두교 여신자가 선교사님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선교사님은 그 여인에게 남편이 박해를 할 때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저는 남편이 그럴 때면 그를 위해 더
좋은 음식을 만들고, 남편이 불평할 때면 마루를 더 깨끗이
닦고, 남편이 퉁명스럽게 말하면 더욱 더 부드럽게 대답하지요. 선교사님, 저는 제가 예수 믿은 후로 남편에게는
더 사랑스런 아내가, 자녀들에겐 더 자상한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늘 노력하고 있어요." 이 여인의 삶 속의 작은 행함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주 평범한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랑의 원자탄과 같은 것입니다. 이 여인의 모습이야 말로 단지 예수 믿는다는 신조주의만이 아닌 실제적인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짜 믿음이
아닐까요? 저와 여러분도 올해엔 작은 것 하나라도 행함이 있는 진짜 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전파하는 멋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축원합니다. 옆사람에게 말해보라. “행함이 있는 진짜 믿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