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회당 안에 모세의 자리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이 자리는 믿음이 좋고 율법을 잘 알고, 존경받는 랍비가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는 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앉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왜나하면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기로는 교만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본래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리새’가 의미하는 것처럼 죄와 분리된 삶을 살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었고 서기관들은 율법 지식이 많고 지혜로 왔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다고 책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가르치기만 하고 정작 율법을 잘 못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일부러 율법을 안지킨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에 ‘~을 하라는 율법’은 248개, ‘~을 하지 마라는 율법’은 365개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지켜야 할 모세의 율법은 모두 613개였습니다. 십계명도 외우기 힘든데, 613개 율법을 다 외울 수 있었을까요? 설령 613개 율법을 다 외운다고 해도 매일 613개 율법을 전부 다 지킬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못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과들 서기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을 전부 다 못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그들이 율법을 전부다 못지키는 연약한 사람이라고 인정 안하고, 마치 율법을 모두 지키는 것처럼 그들의 추한 삶을 거룩한 척 포장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들은 경문 띠를 넓게 해서 마치 기도를 많이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옷술을 더 길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거룩한 의인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에는 죄를 안짓는 의인이 몇명 있을까요? 한 명도 없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가르친 이유가 그들이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율법을 조금 더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의인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회당에서만 모세의 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모세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사람들과 같은 죄인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평소에도 모세의 자리에 앉은 것처럼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을 가르치려했고 대접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모세의 자리는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감사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평소에도 모세의 자리에 앉은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율법을 다 못 지키는 연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무시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평소에도 모세의 자리에 앉은 것처럼 사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범사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바리새인의 감사는 자기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엉터리 감사입니다. 바리새인의 감사는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를 판단하고 무시하는 나쁜 감사입니다. 바리새인의 감사는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감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감사를 기쁘게 받고 복을 줄까요? 바울은 “예수님을 힘 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자기 이름을 높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자신의 이름을 높이며 살지 말고, 자기 삶의 주인인 예수님 이름을 높이며 살아야 예수님의 은혜로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높이며 살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착각할까요? 안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내가 지옥에 떨어질 죄인이었다는 걸 깨닫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날마다 죄를 짓고 예수님께 용서받는 일을 반복하는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높이며 살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하나님의 사랑이 기억나서 진심으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높이며 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보일 때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안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이 내게도 때를 따라 은혜를 줄 거라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높이며 살면 사람들이 나보다 잘 먹고 잘 살아도 마음이 평안하고 부족하게 살아도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 이름을 높이며 살아야, 우리의 삶이 진정한 감사로 넘치고 우리 인생이 버릴 것이 없는 존귀한 인생,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