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요한이 원래부터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요한이 사랑이 많은 사람의 대명사가 됐을까요? 요한은 형 야고보와 함께 어부의 일을 하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더할 정도로 우레처럼 종종 시끄러운 상황을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요한은 여러가지 면에서 사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요한을 사랑했을까요? 맞습니다. 예수님은, 사랑받을 만한 조건과 인격을 갖고 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아무리 부족하고 실수를 해도 사랑을 거두어 버리는 냉정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더라도 왜 예수님은 요한을 다른 제자들 보다 특별히 더 사랑했을까요? 12제자들중 누가 가장 나이가 어릴까요? 12제자들중 누가 가장 오래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 받았을까요? 예, 요한입니다. 요한은 90살넘게 죽는 것보다 힘든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나이 어린 요한이 가장 오래 동안 고통을 받으며 당신을 위해 일할 거라고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특별히 요한을 더 사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요한처럼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나 인격이 없는 죄인임에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우리 대신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근심시키는 실수나 죄를 반복해도,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결 같이 사랑해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요한같이 현재는 우레의 자식처럼 설령 문제투성이라 할지라도, 앞으로는 우리가 당신을 위해 수고할 충성스런 제자가 될 거라고 믿어주면서 사랑을 베풀어주십다. 그래서 우리가 부족해도 늘 예수님의 특별한 관심과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이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릴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어야 합니다. 왜요? 예수님이 이렇게 명령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며 살수 있을까요? 요한의 삶을 더 살펴봅시다. 요한은 구원자 예수님과 부활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실 요한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사랑을 베풀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사랑하며 살았을까요?
요한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성령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게 됐다고 말합니다. 실제 요한의 삶은 오순절 성령 받은 후에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러 물고기 잡으러 돌아갔던 요한이 모든 걸 버리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할 고난을 피하려 했던 요한이, 예수님을 위해 독이 든 잔을 마시며,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던져지는 고난마저 기꺼이 받았습니다. 90살 넘은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밧모섬에 유배를 당해 돌 깨는 중노동까지 해야 했습니다.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던 요한이 이렇게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랑의 사도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에 모두 순종해봅시다. 자신이 힘들어 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님의 충만한 도우심으로 먼저 의지적으로 그들을 사랑해봅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 일터, 그리고 주만높이는교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길 축원�u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