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을 바탕으로 형성된 세상 것들에 대한 집착 (deep attachment) 은 우리의 영안을 가려 죄를 짓게 만들고, 결국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참 다행인 것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은 최소한 세상 것들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지요. 집착 때문에 죽는 일은 일단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단지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꼭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약간의 미련 (lingering attachment)만 있을 뿐입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 약간의 미련도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미련을 가지는 것 자체는 우리를 죽게 만들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마음에 남아있던 약간의 미련이 우리가 결정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해서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들의 전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습니다. 참 귀한 헌신입니다. 그런데, 재산을 바치려는 순간 돈에 대한 약간의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떼 놓고 재산을 바쳤는데, 둘 다 죽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사랑하는 증거’인 집착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약간의 미련’도 어느 순간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가 천국으로 가는 우리의 발목을 순식간에 잡아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기대, 돈을 더 벌고 싶은 충동,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에 몰입 등에 대한 약간의 미련들이 우리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갠지스강은 인도 사람들이 신처럼 숭배하는 거룩한 강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 강의 물을 마시면 병이 낫고, 죽어가는 사람의 몸이 강에 던져지면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서양의 한 과학자가 강물을 떠서 인도 사람들에게 현미경으로 보여줬습니다. 시체와 쓰레기로 오염된 이 강물은 병을 일으키는 독한 세균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과학자는 그 강물을 끓이기 전에는 먹지 말라고 인도 사람들에게 경고했지만, 오히려 인도 사람들은 더러운 물을 먹던 것을 후회하지 않고, 세균을 밝게 보여 준 현미경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강의 신비로운 기적에 대한 집착과 미련 때문에 과학자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과학자가 현미경을 통해 진실을 알려 주자, 현미경을 깨버렸지요. 현미경을 깬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도 현재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집착과 약간의 미련 때문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삶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줄 때, 집착과 미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집어 던져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우리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성경을 집어 던지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안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혹시라도 우리 마음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약간의 미련까지 버려서, 영생도 보장받고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는 많은 축복들도 누릴 수 있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