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이마가 넓고, 눈썹이 없는 여자가 묘하게 웃고 있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나리자 그림에 대해 제가 아는 지식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더구나, 저는 그림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몇 번을 봐도 별로 감동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양 미술 역사를 공부한 어떤 사람의 설명을 읽다 보니, 그림을 보는 느낌이 확 달라졌습니다. 다빈치가 여성 숭배자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왼쪽 강조 요소들. 곳곳에 숨어있는 황금 비율 (1:1.618). 누가 계산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83%의 기쁨과 17%의 슬픔이 섞여 있어서, 최고의 미소로 꼽힌다는 모나리자의 미소 등등. 그림의 배경 지식과 숨어 있는 의미를 알게 되니까, 화가가 의도했던 감동을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를 알면, 감동을 느끼며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각 사람에게 customized된 공평한 보상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감, 봉사하는 기쁨, 심리적 영적 안정감을 주십니다. 반대로,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실제적인 영적 경험, 즉각적인 기도 응답과 같이 눈에 띄는 보상들을 공평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 눈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각자의 필요에 맞춰 절묘하게 보상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원망하지 않으면, 매순간 감동을 느끼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보다 믿음 약한 사람이 우리 눈에는 과분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을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걸맞지 않는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다루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의 원리를 배우는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인간의 가치 기준으로 움직이면 안됩니다. 우리 눈에 비상식적으로 보여도, 하나님의 가치 기준으로 움직여야,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의도를 볼 줄 알아야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의도를 볼 줄 아는 영안이 닫히면, 불평과 원망, 비교 의식과 자존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이 고개 들기 시작하면,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한, 사람들의 인정, 물질적인 대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 봉사를 한 뒤에 사람들이 알아 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마음이 들고, 원하는 대로 일이 안 풀린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이 때, 우리가 할 일은 데이빗 호킨스의 호모 스피리투스에 나오는 말처럼, 자기 일을 계속하고 나머지는 섭리에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공평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마지막 걸음을 최상의 시간에, 최고의 장소로, 옮겨 놓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