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철학자이자 플라톤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자의 피 색깔이 여자보다 더 진하다.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인데, 설마 틀렸을까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관찰을 안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한 겁니다. 20세기의 볼테르 버틀런트 러셀의 인기없는 에세이란 책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러셀은 인간이 저지르는 치명적 실수를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며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믿는 우리가 짓는 치명적 실수도, 말씀의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말씀을 경험하려고 들지 않는 겁니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행동 메뉴얼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시키는대로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택하신 족속으로 산다는 건, 선택 받을 자격도 없는 형편 없는 혈통에서 예수님 혈통에 은혜로 입양된 것을 감사하며, 자기 안에 있는 죄악의 근성을 뿌리뽑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상하고 고위한 혈통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자부심을 느끼며, 저급한 혈통의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리더, 즉 세상에서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산다는 건 더 이상 자신이 가진 조건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 고민하며 사는 겁니다. 구약시대 때 제사장이 되려면, 아론 가문 출신에, 몸에 흠이 전혀 없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맛보아 알지라
우리는 아론 혈통도 아니고, 완벽한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가진 안좋은 능력, 못가진 것, 못배운 것을 완전하게 채워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대접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준 하나님을 위해, 가치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나라로 산다는 건 스스로 말씀을 배우고, 말씀에 들어 있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서 순종하고,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막는 죄 찌꺼기를 제거하는 과정을, 끈임 없이 반복하며 사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 살 때 얻는 평안함과 안전함과 기쁨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산다는 건 하나님께 속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하며, 구별되게 산다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세포입니다. 세포는 몸에 붙어 있어야, 몸이 주는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도 몸인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예수님이 가진 충만함을 전달 받고, 생명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1752년에 벤자민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견했습니다. 피뢰침이 발명되었을 때, 성직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프랭클린을 비난했습니다. 벼락은 하나님이 죄 지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데, 그걸 막는 불경스러운 피뢰침을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성직자들 말에 따라 피뢰침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벼락이 칠 때마다 우리는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할 겁니다. 아무리 유익한 물건도 미련하게 안쓰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혜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는 말씀처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야,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