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인 척해도 예수님을 진짜 믿는다는 걸 삶으로 증명하는 결과물이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성경은 못들어 간다고 말합니다. 그럼,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걸 증명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결과물이 뭘까요? 사도 바울은 통해 첫번째 결과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믿기 전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이 바울로 이름이 바뀐 것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사실은 ‘사울이 예수 믿고 이름이 어떻게 불려지느냐가 아니라 그의 삶이 완전히 바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전한 복음을 듣고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도 완전히 그 삶이 변했습니다. 그래서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택했다는 걸 안다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이 구원자로 보낸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됐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바울은 그들의 뭘 보고 이런 확신을 가졌을까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예배를 잘 참석 해서일까요? 성경을 열심히 배워서일까요?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도를 많이 해서일까요?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이런 일반적인 겉모습들 때문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요? 바울은 예수를 진심으로 믿으면 자동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삶의 결과물들, 바꿔 말하면, 십자가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와 강한 확신이 만들어주는 삶의 변화들 때문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천국에 간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첫번째 그들의 삶의 변화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믿음으로 행한 일을 말합니다. 이게 뭘까요?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일일까요? 기도해서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되는 일일까요? 바울이 말하는 믿음의 역사는 이런 외적인 기적만이 아닙니다. 예수 믿은 후에 생기는 내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믿음의 역사로 번역된 원어적 의미가 ‘예수 믿기 때문에 생긴 변화’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삶이 어떻게 변하나요?
나를 위해 아무 조건도 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님의 피가 영혼 안에 흐르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됩니다. 실수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그에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입히면 나의 죄를 대신 갚으신 예수님의 피의 능력이 기억나서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이 곧 심판주로 다시 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절제하게 됩니다. 육체의 만족함 보다 구원이 주는 영혼의 만족함으로 더 기뻐하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 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증거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이렇게 깊어진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는 완벽하게 거룩한 삶을 살지는 못해도 날마다 변화되려고 노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신 안의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으로 믿음이 점점 더 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맞지만 진짜 믿음이 있다면 삶이 안 변하는 게 기적입니다. 이상한 논리로 아무리 천국에 간다고 주장해도 위험 요소들에 의해 믿음이 덮여버린 사람, 삶이 안 변하는 사람은 심판대 앞에서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자신은 죽고 예수님만 살려서, 믿음을 깊게 만들어 천국에 들어갈 결과물을 가진 복된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