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에 성경 지식이 좀 있는 분이라면 무교병은 좋은 것이고, 유교병은 나쁜 것이라고 보통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어떤 곳은 유교병도 드리라고 합니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줏대가 없는 분인가요? 아니면 성경이 일관성 없게 기록된 믿지 못할 책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규칙과 의도가 무교병과 유교병을 예물로 바치는 방법에 숨어 있는 것인가요? 맞습니다. 하나님의 규칙이 유교병과 무교병 안에 숨어 있습니다. 무교병과 유교병은 사실 그 자체가 좋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언제 이것들을 먹느냐에 따라서 그 때 상징하는 의미가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무교병은 유교병과 함께 하나님께 바치고 먹을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무교병만 먹어야 하는 특별한 때가 있었습니다. 첫째, 애굽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 날에는 백성들이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전혀 들어 가지 않은 무교병만을 반드시 먹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성경 학자들은 이 유월절을 성도들이 예수 믿고 죄 용서받아 의롭다 함을 받은 칭의의 날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무교절 기간입니다. 무교절은 피비린내 나는 재앙을 피하게 해준 하나님이 감사하고 또한 두려워서 누룩으로 상징되는 세상적인 추한 생각이나 죄를 없애고 오직 거룩한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사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성경 학자들은 무교절이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가기 전까지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성화의 기간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구약시대 성소의 떡상에 있는 무교병은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상징합니다. 정리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병’은 ‘구원받은 날부터 천국가기 전까지’ 이 땅에서 성도로서 거룩하게 살려는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의 오늘날 의미는 ‘예수님의 보혈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타락한 세상의 원리를 따르거나 죄를 짓지 않도록 매순간 자신을 살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원리와 죄가 부풀어서 커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누룩 없는 떡인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 무교병을 고난의 떡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교병을 먹는 것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고난의 삶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에머슨 목사라는 분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그늘 즉, 고난은 우리 자신이 햇빛에 서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햇빛에 서 있는 사람, 즉,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매일 고난과 씨름하며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신앙 때문에 세상과 갈등이 생기고 그로 인해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벗는 것 자체가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란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고난 때문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위해 고난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고난의 떡인 무교병을 먹지 않아 우리 안에서 용서와 사랑, 조화와 질서, 성숙과 확고한 믿음을 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성령님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성령 훼방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 지 지금 당장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있다면 빨리 누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 잠깐 고난당하는 우리를 믿음 안에서 온전하게 하고, 굳건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터를 견고하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를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