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Giving
우리는 밥 먹는 모습도, 성격도, 능력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공통점이 있냐고요? 바울의 모습을 통해 그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고 난 후에 20여년 동안.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란 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죄인이 바로 ‘나’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정말 세상에서 제일 나쁜 죄인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은 우리가 볼 때 예수 믿은 후 완벽할 정도로 믿음 생활을
한 의인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을까요? 바울은 율법을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죄를 안 지었을까요?
당연히 지었습니다. 바울은 특별한 기적을 체험한 뒤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죄를 안 지었을까요? 당연히 지었습니다. 바울은 죽는 것보다 힘든 고난을 받으면서 열심히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죄를
안 지었을까요? 당연히 지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주의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죄를 안 지었을까요? 당연히 지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루도 죄의 법에서 못 벗어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겉은 믿음
좋은 의인처럼 보이지만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매일 죄 짓는 자신을
보며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내 마음은 예수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수시로 죄에게 져서 죄에 무너지는 나를 볼 때마다 정말 괴롭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탄식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뜻대로 선을 행하며 살기 원하나요? 아멘! 그런데 하루라도 죄를 안 짓는 사람 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죄의 법에 사로잡혀서 죄를 짓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아무리 천사처럼 성격이 좋아도 죄를
지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우리는 바울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더 어이없는 죄를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해야 할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죄를 고치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들여다보며 겸손하게 믿음생활을
해야 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생활
잘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웃을 겁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많이
안다고 설교를 비판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는 사람을 황당해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어려움을 당했는데,
마치 엄청난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을 안타까워 할 겁니다. 하나님은 ‘나는 주의 일을 많이, 열심히 한다’고 어깨에 힘 주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복을 안 줍니다. 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는 곤고한 죄인이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괴롭다”고 탄식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착한 일을 많이 했는데도, 나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에게 놀라운 복을 줍니다. 우리는 날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주제
파악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죄의 법에 사로잡혀 죄를 짓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하루라도 예수님을
안 찾으면, 죄의 포로가 되어 괴물로 변하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의지해서 죄를 회개해야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해줍니다. 매일 인생을
새롭게 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매일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예수님을 찾아서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서 만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풍성하게 줍니다. 할렐루야. 곤고한 사람인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때를 따라 은혜를 베풀어주는 예수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 뭘까요? 감사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인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해주고 우리 인생을 살맛 나게 새롭게 해주시는 예수님께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살고 있나요? 아마 우리 모두가 ‘나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감사는 ‘단지 고맙다고 생각만 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뻐하는 감사는 Thanks giving, 예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다시는 예수님이 가슴 아파하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힘쓰는
thanks giving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우리 삶으로 thanks
giving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happy한 추수 감사절이 아니라 예수님이 정말 happy한 추수 감사절을 보내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