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대하는 성도의 인생과 인내가 뭘까요? 세상에서 평탄하게 살고 싶은 욕심을 견뎌내는 겁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사회적 지위나 돈을 지키고 싶은 욕심을 참는 겁니다. 사람들과 싸워 이기고 싶은 욕심을 참는 겁니다. 순간순간 마음을 휘저어놓는 정욕에 넘어져, 하나님 명예를 더럽히는 말과 행동을 하지않기 위해 참고 포기하는 인내의 연속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인생과 인내를 요상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성도의 인생이라고 해석합니다.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인내라고 해석합니다. 불의를 보고도,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인내라고 해석합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죄를 짓는 사람을 봐도, 무조건 용서해주고, 기도만 하며 기다리는 것이 인내라고 주장합니다. 잘못된 해석입니다.
성도의 인생은 십자가에 정욕을 못박고 참으며 인내하는 과정입니다. 정욕을 참으려고 인내하지 않으면, 죄 구덩이 안에서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만 쳐다보다가 믿음을 잃게 됩니다. 블의를 못 본체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죄를 덮어주는 게 인내라고 해석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욕되게 하는 죄를 뒤집어쓰고, 서로 더럽다고 욕하며 상처받는 처참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겁니다. 성도의 인생은 십자가를 진 예수님이 있는 장소, 즉 주유소에 날마다 들러서, 자기 죄를 뽑아내고 성령을 채워넣는 과정을 반복하는 겁니다. 주변 영혼들이 죄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보면, 주유소로 데려가서, 인내심을 갖고 성령을 채우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무조건 참는 게 인내라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잘 살고 싶고,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정욕 때문에 생기는 타협과 싸움은 피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하는 사탄의 술수에는 다른 종류의 인내로 대처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다른 종류의 인내가 뭘까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구원자 예수님을 찾아가서 성령을 공급 받고, 하나님이 역사할 때까지, 하나님이 새 날을 주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겁니다. 구원과 축복의 약속을 기억나게 만드는 은혜의 장소, 즉 주유소에서 성령을 공급받고 사탄과 싸울 준비를 하는 겁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 일이 생겨도, 돈을 조금 덜 벌고, 세상 친구들과 멀어져도, 몸이 힘들어도,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인내하면서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보충 받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서, 인내로 자기 영혼도 지키고, 하나님이 준비해놓은 복도 풍성히 누리는 겁니다.
필리핀의 조던 망 오산은 돋보기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하루종일 뙤약볕에 앉아, 무거운 돋보기를 들고, 종이를 태워, 수억 개의 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의 인생도 이 화가의 삶과 비슷한 것같습니다. 햇빛을 모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도 포기하고, 고생스럽게 뙤약볕에 앉아 있는 화가처럼, 성도도 빛 되신 예수님이 주는 성령 에너지를 모아 성도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상정욕도 포기하고, 고생스러워도 주유소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화가가 어떤 부분은 하얗게 남겨두는 것처럼, 세상 정욕을 포기하려고 인내해야 하니까요. 화가가 어떤 부분은 까맣게 태우는 것처럼, 속이 타들어가도 인내하면서 주유소에서 은혜받는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인내 뒤에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복과 약속하신 것을 받는 복이 꼭 따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