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를 수락한 신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천사들이 예수님을 우리 죄에서
구원해 줄 분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으로 첫 사역을 시작한 이유도,
당신이 앞으로 하게 될 일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예수님은 당신에게 맡겨진
구원 사역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도, 예수님께서는 땅 끝까지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관심이 온통 구원에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게 만들고,
믿는 사람들이 끝까지 구원을 잃지 않도록 도와 주기 위해, 기적과 축복과 고난을
구원으로 인도해 가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수 믿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또 우리의 연약해진 믿음이 축복을 받음으로 굳건하게 세워 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기적과 축복과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딧 쉐이퍼의 말처럼, 구원 받은 사실에서 오는 깊고 참된 기쁨을 주기 위해, 하나님은 전에 없던 큰 시련과 문제들에
말려들게도 만드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처럼 구원이라는 안경을
끼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원 받으라’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예수를 믿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긍정의 힘을 쓴 조엘 오스틴의 주장처럼, 원하는 것을 마음에 믿고 주문을 외우듯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배달해 주는 택배 직원으로 취급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진리라고 말하는 믿음=축복,
문제 해결이라는 안경을 끼면, 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믿음을 버리는 무서운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고난을 주는 이유와 때때로
우리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의 깊은 의도를 보지 못해서, 지옥이 있다고 알려주는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을
놓쳐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인기 있던 조각가이자 화가인 조지 프레드릭 왓츠는 희망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둥근 지구본 위에 리라를 켜고 있는 한 여자 그림입니다. 자세히 보면, 리라의 줄은 하나만 빼고 다 끊어져 있고, 여자는 눈을 가려 못보는 상태입니다. 이 여자는 유일하게 남은 한 줄에 온 정신과 귀를 기울이며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이 그림을 본 미술 평론가들은 절망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나, 왓츠가 희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 그림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눈을 닫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며 사는 사람. 세상이 주는 기쁨, 권력, 돈, 명예가 다 끊어져도, 천국에 간다는 소망의 줄을 연주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삶을 계속 살 수
있는 사람. 이것이 구원 받은 사람의 진짜 모습 아니겠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대단한 삶을 못살아도,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겁을 줘도, 소망의 줄을 연주하며 아름답게 사는 거룩한 예수님의 신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수락한 신부가 되어 예수님이 다시 올 때까지 자신을 거룩하게 준비해야 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아야 됩니다. 히브리어로
‘칼라’인 신부가 뜻하는 것처럼, 신랑을 위해
문을 닫고 안에 갇혀 살아도 장차 신랑과 행복하게 살 것을 기대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수락한 신부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