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우리는, 숫자 25개만 모아놓아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삶이 꼬이고 복잡해지면 예수님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 예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남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여 70년의 포로생활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70년의 포로생활이 끝나갈 무렵인 BC538년 경 바사 제국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여 유다백성들을 이스라엘로 돌아가 성전을 짓도록 허락합니다. 그래서 당시 유다총독으로
임뎡된 스룹바벨이 남유다 백성들 일부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이들은 돌아오자 마자 성전을 짓기
시작했지만 사마리아인들의 훼방으로 16년 동안 성전공사를 중단하고 맙니다. 유다백성은, 스룹바벨과 함께 유다로 돌아와서 성전공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라가 회복되고, 인생이 풀릴거라는 희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성전공사를 시작했으니까 복을 받을 거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성전 짓는데 필요한 돈이
적어서 힘들었습니다. 성전 짓는 사람들이 부족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유다백성은, 성전만 지으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돈이 저절로 생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돈이 안생겼습니다. 그래서 유다백성은, 사는데 필요한 돈을 벌며, 성전까지 지어야 했습니다.
유다백성은 잘못도 없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부끄러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유다백성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게 살았습니다. 유다백성은 몸도,
마음도 지쳤겠죠? 하나님이 성전 공사를 하라고 시킨 것이 맞나는 의심이 생겼겠죠? 성전공사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했겠죠? 다시 성전공사를 시작한다고 해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생각하면, 성전 지을 용기가 안생겼겠죠? 그래서 유다백성은 성전공사를 다시
시작하지 않은 거다. 이럴 때 학개 선지자에 이어 스가랴가, 하나님께
받은 환상을 유다백성에게 전달합니다. 그 환상의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유다 백성들을 돌보아 달라고
중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세상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잘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복주겠다고 선택한 유다 백성은 지금 아프고
힘들고 부끄러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백성을 버려두신 지가 70년이나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유다 백성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는 가만 있어라, 간섭하지 말라’고 화를 냈을까요? 안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구원하려는 당신의 계획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말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유다백성을 대신해서 유다백성의 아픔과 힘듦과 부끄러움을 얘기하자, 유다백성을 회복시켜주겠다는 선한 말씀과 유다백성을 돌봐주겠다는 위로의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안하고 계셨으면 유다가 회복되고, 유다백성이
은혜를 받을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유다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했기 때문에. 유다는 BC 516년에 마침내
성전을 완공했고, 3번에 걸쳐 당한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유다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딱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이 유다백성의
삶처럼 꼬이고 얽혀서 아파하고 힘들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보다 더 마음 아파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살다가 지쳐서 힘들어할 때 예수님은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우리를 응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다가 실망하고 포기할 때, 다시 믿음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격려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말씀으로 격려해도 우리가 주저 앉아 울고있으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우리 사정을 대신 말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달라고 중보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욕을 먹고 부끄러음을 참아야될 때가 있습니다. 위로하는 말씀이 들리고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말씀이 들려도 전혀 위로가 안되고,
다시 하나님의 일을 할 용기가 안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보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 삶이 얽혀 복잡하고 우리가 고난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면 하나님이 복주겠다고 선택한 우리 나라와 교회, 가정이, 하나님이 주는 은혜와 복으로 풍부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불쌍히 여기고 위로해줍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들이 흰 눈처럼 하얗게 용서받고, 다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기회를 얻게됩니다. 스가랴 이름의 의미는 ‘주께서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가랴서는 ‘주께서
백성들을 기억하시고 적절한 시기에 복을 주겠다’고 약속한 책입니다. 우리의
삶이 꼬이고 힘들때 스가랴서를 통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