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먼저 할께요
우리 인간은 놀라운 예술작품을 만든 사람이나, 또 어려운 도전에 성공한 사람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큰 감동을 느낍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큰 감동을 느낄까요? 성경에 가젤, 한글 번역으로는 사슴, 혹은 노루라는 뜻의 도르가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애게 특별한 점은 다른 여인들과 달리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제자로 소개된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도르가가 어떻게 살았길래, 예수님의 여제자로 인정받았을까요?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에
도르가의 가족에 대한 얘기가 없는 것을 보면 도르가 자신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연약한 여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도르가는 자기 형편도 안좋은데 과부들 구제하는 일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선행 즉, 착한
일도 많이 했습니다. 도르가가 했던 선한 일은 하나님이 과부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에게 가르치는
일, 과부들 영혼이 지치고, 힘들어서 쓰러지면, 함께 기도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회복시키는 일, 그리고 과부들 영혼이
병들면 과부들이 듣기 싫어해도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영혼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도르가는 죽어서도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과부들에게 꼭 필요한 산소같은 여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도르가는 죽어서도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람임을 증명받게 됩니다. 또한 도르가는 죽었다 살아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도르가가 놀라운 예술작품을 만든 사람처럼,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큰 믿음의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어려운
도전에 성공한 사람처럼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해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처럼,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탁월한 외모나 조건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도르가는, 이런 놀라운 복을 받았을까요? 도르가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구제하고 영혼 보살피는 착한 일을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이 명령한 최고 법을 지킨 도르가에게 감동해서 그녀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도르가처럼 구제하고, 영혼 돌보는 착한 일을 계속하면 하나님이 감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합당한 복을 받습니다. 죽은 도르가가 살아난 것처럼, 상상하지 못한 기적도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도 도르가처럼 구제하고, 영혼 돌보는 착한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감동 안하는 것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데,
기적은 커녕 합당한 복도 못받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그런 분들은 이웃 사랑을
반만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명령이 주변 사람들만 사랑하는 거라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사랑해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 가장 중요한 이웃은 따로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가족입니다. 우리의 부모님과 남편, 아내와 자녀들입니다. 우리 주변엔 자기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구제만 열심히하는 크리스찬이 많습니다. 자기 가족을
사랑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맞습니다. 자기 가족을
감정적으로 사랑 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자기 가족을 사랑 안 하는 크리스찬, 영적으로 가족에게 착한 일을 안하는 크리스찬은 많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부모님의 영혼이 지쳐있는지 괴로운지 살피고, 영혼의 힘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며, 격려해드려야 합니다. 아직도 예수를 안믿어서 지옥에 떨어질가능성이
있는 부모님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면 남편 영혼이 지쳤는지, 병들었는지 살피고, 남편
영혼이 평안하고, 강건하기를 기도해주줘야 합니다. 남편이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가 바가지를 긁거나 말이 안되는 요구를 할때는, 아내가 성령님을 잠시 출장
보낸 상태라는 걸 깨닫고, 성령님이 아내 영혼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자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자녀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책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이웃 사랑은, 가족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물질적으로 잘해주란
뜻이 아닙니다. 영혼이 잘되게 살피고 보살펴줘서 범사가 잘되는 복을 받게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를 믿는데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에게 사랑을 못 받아서 일까요? 현재 나쁜 상황과 조건속에 살고 있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내가 먼저 내 가족과 이웃들을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 가족과 이웃들의 영혼을 돌보는 착한 일을 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감동하면서 우리에게 합당한 복과 기적을 분명히 베풀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