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 안에 참 많은 기념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활절, 성탄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금요일과 같은 절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러한 날들을 해마다 기억하며 지킬까요? 단지 교회 전통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날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의미를 다시 마음 깊이 새기기 위함입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자칫 희미해질 수 있는 믿음의 본질을 붙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성금요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날은 슬픔과 애통의 날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성금요일은 단지 슬퍼하는 날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 구원의 문이 열린 날이며,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무너진 승리의 날입니다. 구약 에스더서에 기록된 부림절은 이러한 성금요일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비추어 줍니다. 유다 민족은 하만의 악한 계략으로 하루아침에 멸망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죽음의 날짜까지 정해진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놀라운 반전을 이루셨습니다. 멸망의 날로 정해졌던 날이 오히려 구원의 날이 되었고, 눈물의 날이 기쁨의 날로 바뀌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말씀은 성금요일의 영적 의미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십자가 역시 겉으로 보면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조롱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시며,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모든 것을 끝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죄와 사망의 권세는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패배가 아니라 죄를 향한 완전한 승리였고,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성금요일은 바로 이 놀라운 반전의 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대신 흘리신 보혈로 인해 우리는 죄책감과 정죄,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성금요일은 단순히 슬퍼하는 날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감사와 회개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날이어야 합니다.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부림절에 유다 백성이 서로 예물을 나누고 가난한 자를 구제했던 것처럼,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반드시 사랑의 실천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은 삶 속에서 섬김과 나눔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번 성금요일과 이어지는 주말 동안,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깊이 붙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며, 그 사랑 앞에 우리의 삶을 다시 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듯이, 우리의 삶 또한 누군가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금요일이 단지 지나가는 절기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새롭게 회복되고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