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인 척해도 예수님을 진짜 믿는다는 걸 증명하는 삶의 결과물이 없으면 천국에 못 들어 갑니다. 이것은 신앙의 상식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첫번째 결과물로 ‘날마다 자신은 죽고 예수님만 살려서 자신의 믿음을 깊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깊이는 개인적인 내적 변화의 차원에서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럼, 나머지 두 가지, 예수 믿는다는 걸 증명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삶의 결과물은 뭘까요? 두 번째 삶의 결과물은 ‘사랑의 수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수고’가 뭘까요?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수고’는 불쌍히 여기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단순한 행위가 아닙니다. 여기서 사랑의 수고는 ‘예수 십자가의 사랑으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하는 은혜로운 말과 행동으로 하는 섬김’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수고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의미가 ‘복음을 위해 하는 수고’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 우리 안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요? 예수님이 흘린 십자가 피의 능력을 안 믿으면 예외 없이 모두 지옥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예수 안 믿는 내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발적으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있나요?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에, 주변에 상처받거나 시험 들어 믿음이 약해진 사람들을 보면 아무 생각없이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북돋워주게 됩니다. 정말 괴팍한 사람들도 성령님이 그 안에 임하기만 하면 순한 양처럼 변화된다는 걸 믿기 때문에, 부담스러워도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하면서 기회가 되면 기꺼이 말씀으로 예수 믿도록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내가 좀 손해를 보고 내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쁘게 봉사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로 이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믿음이 깊어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며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삶의 결과물은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으로 우리 믿음의 길이를 잴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얼마나 오래 예수를 믿었는 지를 재는 게 아닙니다. 만약 이처럼 신앙의 연수로 믿음의 길이를 잰다면 모태신앙의 믿음이 제일 길겠네요? 맞나요? 아닙니다. 여기서 길이는 이런 절대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의 길이는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던 시간들,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고 고통받았던 시간들, 예수님 때문에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했던 특별한 시간들을 모두 합산해서 측량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예수 믿기 때문에 참아야 했던 억울하고, 답답하고, 가슴 아픈 시간들을 수도 없이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대적인 인내의 시간들이 천국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어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모두 합산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얼마나 오래 믿었나’ 보라고 하지 않고, ‘어떻게 예수님이 재림할 날을 기다리는지’ 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믿음의 넓이와 길이의 진리를 진심으로 믿는가? 아멘. 우리 모두 이 진리를 마음에 품고 자기 믿음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날마다 측정하며 삽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