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무화과는 4월부터 (유대력으로는 1월) 10월까지 총 5번 열매를 맺습니다.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첫 열매는 작고 당도가 떨어져서 상품 가치는 없지만, 12월부터 5개월 동안 과일을 못 먹었던 이스라엘인들에게는 큰 기쁨을 주는 열매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무화과의 첫 열매는 파게고, 나중에 열리는 열매는 테에나로, 각각 다른 히브리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테에나가 아니라 파게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저주를 받아 말라 죽었습니다. 파게는 우리를 구원할 가장 기본적인 믿음을, 테에나는 믿음의 열매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테에나 같은 대단한 믿음의 열매들이 아닙니다. 무화과의 첫 열매 파게처럼,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일차적 반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은 옛날에 한 번 울면서 했으니까,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으면, 무화과나무처럼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는 봉사를 하고, 의무적으로 헌금을 내고, 온갖 생색을 내면서 구제하고, 습관처럼 예배에 참석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면, 이런 열매들은 자연스럽게 맺힌다고 말씀하십니다.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려주신 은혜가 뼈속 깊이 사무치면, 예수님이 기뻐하실 것들을 하나씩 찾아서 하게 되고, 열매들은 자동적으로 맺힌다는 것입니다. 잘 풀리던 일들이 꼬이고,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터지고, 병이 낫기는 커녕 더 심각한 상태로 진전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나쁜 환경과 관계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일 때,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믿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 나가던 새벽 기도에 참석하고, 죽을 각오로 금식하고, 마음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미워죽겠는 사람을 의지적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화과 열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화과 첫 열매가 마음 안에 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 최악의 순간이 은혜와 감동의 순간으로 변화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견디며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 은혜 때문에,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감사와 감격을 느끼게 되고,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 때문에, 소망의 끈을 놓치 않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우리의 주변 환경이 꼬여서도, 나쁜 사람이 옆에 있어서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를 향한 감사와 감격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 감격과 감사만 회복되면,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더라도 기쁨과 소망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십자가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떤 순간에도 십자가를 기억하고, 십자가로 돌아가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