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언어를 세상 언어로 해석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시편 23편에 기록된 쉴 만한 물가가,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쉴 만한 물가는, 우리가 꿈꾸는 것처럼 평화롭게 쉴 수 있는 물가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인도하는 쉴 만한 물가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장소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쉴 만한 물가는 잠깐 목만 축이고 떠나는 곳입니다. 광야에는 박테리아와 동물들의 똥오줌 때문에 오염되어서, 먹을 수 없는 물이 많습니다. 이런 물을 발견한 목자는 양들이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물을 주지 않고 떠납니다. 그러나, 양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애스터 티라는 풀을 넣고 물을 끓입니다. 끓인 물을 양들이 갈증만 해소할 정도로 조금만 먹이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양들을 살리는 맑은 물을 찾아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목자 예수님도, 우리 눈에 완벽해 보이는 기회가 왔는데도, 기회를 놓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생각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최상의 응답을 받는 것처럼 보여도, 그 기회가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만드는 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정도면 살만하다고 마음 놓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기게 만들고, 조금 더 참고 노력해야 될 일이 생기게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현재 상황이, 우리가 살기에 완벽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더 나은 미래와 복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광야를 연못으로 바꾸고, 마른 땅을 샘물로 변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 자녀인 우리에게 눈 앞에 보이는 건 포기하고 잊어라, 지금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말씀할 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양인 우리가 볼수 없고, 유능한 목자만 볼 수 있는 영적인 이유가 틀림 없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도, 실망하면 안됩니다. 힘들어도 더 견디라고 말씀할 때, 불평하지 말고,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이 예수님으로 인해 만족함과 축복을 누리는 곳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성경이 의미하는 쉴 만한 물가는 목자의 갈대 피리 소리를 들으며 에너지를 보충하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맑은 물을 찾으면, 목자는 양들이 물을 마시는 동안, 피리를 붑니다. 광야에 사는 맹수들이 물가로 와서 양들을 잡아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목자의 피리 소리가 들리면, 양들은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번 쉴 만한 물가에 도착하기 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에너지를 이곳에 머무는 동안 반드시 보충하고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피리 소리는 목자되신 예수님 음성을 상징합니다. 말씀, 기도, 찬양을 통해 예수님 음성이 들릴 때는, 쉴 만한 물가에 도착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영혼이 완악한 상태로 변하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장소에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 우리 영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들을 제거하고, 하나님 은혜가 들어갈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서, 영혼이 회복되고 천국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는 영적 에너지를 영혼에 비축해야 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나그네입니다. 한 번 쉴 만한 물가에 도착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쉴 만한 물가에서 영혼을 새롭게 회복하고, 또 다른 쉴 만한 물가에서 영혼 점검하는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양입니다. 쉴 만한 물가는 낭만적인 휴양지가 아닙니다. 우리 영혼을 깨끗이 수리하고 은혜를 보충받는 영혼 정비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