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선한 사마리아인 story에는, 강도를 만나서 거의 죽은 상태가 된 사람, 그 사람을 모른 채하고 지나가는 제사장과 레위인, 강도 만난 사람을 조건 없이 도와 주는 사마리아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다른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타고난 성품이 나쁘거나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종교 기준과 자기 지식의 울타리에 갇히는 자기 고집에 빠지니까, 죽어가는 사람도 외면하는 무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자기 고집을 깨부수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존경할 만한 사랑을 보이는 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는 없고, 사마리아인에게는 있는 이 열쇠가 뭘까요?
이 열쇠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앞뒤 계산도 하지 않고 도와 주기부터 하는 대책 없는 사마리아인의 사랑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드니까. 종교적인 이념이나 기준도 보이지 않고, 죽음도 무릎 쓰게 되고, 시간도 물질도 아까워하지 않고 돕게 되었습니다. 자기 고집은 그냥 깨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가 정확하게 눈에 보이고 그 필요를 적절하게 채워주는 진짜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잃어버린 모든 것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사랑이 사마리아인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고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종교적 이념이나 기준 때문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환경의 위협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대처하는 담대함을 소유하게 됩니다. 시간과 물질에 꽁꽁 묶여 안절부절 하면서 살지 않게 됩니다. 자기 고집에 빠져서 영생을 놓치는 엉뚱한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 주는 행복의 열쇠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생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처럼, 아무 것도 따지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알아주고, 가엽게 여기며, 끝까지 외면하지 말고 도와줘야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지 말고, 누가 우리를 욕하고 힘들게 만들어도 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해져서 더 이상 괴롭히지 않도록 축복을 빌어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죄악을 저지르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베드로전서 3장 8-9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축복을 이어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나이팅게일에게 준 훈장에 이런 말이 써있다고 합니다. 긍휼은 말로도 베풀 수 있고, 돈으로도 베풀 수 있다. 돈도 없고 말로도 할 수 없으면 눈물로도 베풀 수 있다. 사랑이 담긴 말, 실질적 도움, 눈물어린 기도를 하게 만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자기 고집을 깨부수고,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살다가, 영생을 얻게 하는 기적의 열쇠입니다. 예수님이 이 열쇠로 우리를 살렸고, 지금도 이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이 열쇠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그러면, 근심이 사라지고 찬송이 끊이지 않는 은혜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