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요?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말 구유에 누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말 구유에 누워 있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베들레헴은 해발 900m 산 위에 있는 도시기 때문에 말대신 나귀를 타고 다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말 구유가 아니라, 나귀 구유에 누워있었습니다. 스가랴는 BC 500년 경에 예수님이 나귀를 탈 메시아라고 예언했고 예수님은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유월절에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님이 나귀 구유에 누운 건,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십자가를 지러 갈 메시아라는 걸 예표하는 사건이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운이 없어서 우연히 나귀 구유에 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처한 계획과 섭리에 의해 나귀 구유에 누워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을 질서 있게 진행시켜서, 위대한 구원 역사를 시작했던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 소유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벌어지는 모든 일은, 운이 없거나,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닙니다. 완벽한 하나님 섭리에 따라 질서있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되고, 죽을 만큼 힘들어도, 우리 인생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들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질서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 영광을 반드시 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고 답답한 인생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나귀 구유에 있는 모습을 통해, 나귀가 짐을 실어나르는 능력이 많은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책임질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메시지를 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말씀한 겁니다. 책임은 영어로, Responsibility입니다. Response와 Ability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진다는 것은,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책임질 능력이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인생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인생 문제를 예수님께 던지려면, 나귀가 자기 구유에 있는 먹이만 먹고, 예수님이 말씀으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마음에 심으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귀 구유에 누워있는 건, 우리가 말씀을 영혼에 심으며 살아야, 구원도 받고, 영혼의 쉼을 얻는 복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겁니다.
양자물리학자 David Bohm이 글리세린처럼 끈적하고 투명한 액체를 투명한 회전 원통 안에 넣고, 불용성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다음, 원통을 돌렸습니다. 점처럼 보이던 잉크 한방울이 액체 속에서 가느다란 실처럼 천천히 퍼지다가, 결국에는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원통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자, 액체 속에 사라졌던 잉크 입자들이 천천히 다시 모이다가, 잉크 한방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David Bohm은 이 현상을 감춰진 질서라고 정의했고, 우주만물과 인류의 과거 전체가 감춰진 질서에 따라 현재에 녹아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찮은 잉크 한방울의 움직임에도 감춰진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면서까지 구원해 낸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질서있게 돌봐주지 않겠습니까? 완벽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섭리에 따라 탄생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성실하게 말씀을 마음에 심으며 살면, 질서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평한 삶과 영혼의 쉼이 있는 삶을 반드시 선물로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