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로 시작하는 시편 8편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주의 이름’을 신학자 Kraus의 주장에 기초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환경이나 사건들, 축복과 은혜라고 정의하려고 합니다. 영광스런 하나님의 작은 부분을 보여주는 영광의 부스러기라는 말이지요. 또, ‘주의 영광’은 전능하고, 사랑이 많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축복과 은혜를 주는 전능한 하나님이 하늘 너머에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이 영광의 부스러기들 너머에 있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이 시편을 바꿔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하나님! 당신이 실제로 살아서 역사하는 전능자임을 알게 만드는 환경과 사건들이 온 땅에 가득 차 있네요. 이런 것들은 당신의 완전한 영광을 조금 보여 주는 영광의 부스러기들입니다. 완전한 당신의 영광은 아름다운 자연, 우리가 받는 축복과 은혜 뒤에 가려져 있네요. 당신이 하늘 너머에 set up해 놓으셨네요. 하늘 너머에 set up되어 있는 완전한 당신의 영광을 보니, 손가락만 사용해도 하늘과 달과 별들을 만들 수 있는 전능한 당신이 보입니다. 당신을 알만한 사건들과 환경들을 볼 때는 약간의 의심과 불평이 생겼었는데, 당신의 완전한 영광을 보고 나니 제가 하나님 앞에 권리를 주장하거나 불평할 수 없는 먼지같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당신의 완전한 영광을 보고 나니, 벌레보다 작은 제가 하는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들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매번 실수하고 넘어져도 용서해 주고, 필요한 것이 생길 때마다 도와주는 당신의 은혜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당신이 창조한 세계를 백만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 당신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습니다. 제가 어린 아이와 젖 먹는 아기 수준 밖에 되지 않는데도, 저를 대적하는 세력들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이유는, 그들이 저의 삶을 통해 나타난 당신의 영광을 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늘 너머에 있는 완전한 당신의 영광을 보고 인정한 것밖에 없는데, 그 영광의 광채가 제 삶을 통해 삐져나와 당신이 전능자, 구원자, 위로자, 치료자라고 선포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완전한 당신의 영광을 계속 보는 한, 저는 영광의 통로가 되어서, 존귀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다윗은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을 세워 하나님을 기억하는 증거로 삼았던 것처럼, 시 (150편 중 73편)로, 감사 제사와 회개 제사로, 성전을 지을 땅과 재료들을 준비하는 헌신으로, 그의 삶 속에 증거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영광의 부스러기 대신,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존귀하고 능력 있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윗처럼 겸손한 사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 존귀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받는 축복과 은혜 너머(above)에서 역사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합시다. 축복과 은혜를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증거들을 남겨 봅시다. 때로는 일기로, 때로는 특별 기도로, 때로는 특별 예배로, 때로는 봉사로 하나님을 생각나게 만드는 증거들을 우리 삶에 남겨놓아 봅시다. 그러면, 천국에 갈 때까지 길을 잃지 않고, 능력 있게 사는 Christian들이 될 수 있을 겁니다.